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인 그레이 (문단 편집) === 억지로 왕위에 오르다 === 헨리 그레이와 프랜시스 브랜든은 처음에는 [[헨리 8세]]의 왕비로 제인을 내세웠지만 이미 헨리 8세는 왕비를 한참 갈아치웠던 데다가 노령이라 실패했다. 그러자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6세]]의 왕비로 들이려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6세와의 혼인도 주선자인 토마스 시모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데다가 에드워드 6세가 병으로 요절하는 바람에 허사로 돌아간다. 그러자 마침 그녀를 에드워드 6세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와 제인의 부모가 손을 잡았다. 제인의 부모는 그녀를 존 더들리의 아들 길포드 더들리와 강제로 결혼시키고, 병석에 누운 에드워드 6세를 회유해 왕의 자식을 우선시하는 왕위 계승 법률을 무시하고 제인을 차기 왕위 계승권자로 지정하게 했다. 원래 에드워드 6세가 후손 없이 사망하게 되면 계승권 순서상 에드워드 6세의 첫째 누나인 [[메리 1세]]가 왕위를 잇게 되지만, 에드워드 6세와 달리 메리는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다. 메리 다음으로 계승권을 가진 둘째 누나 [[엘리자베스 1세]]가 성공회 신자였으나 엘리자베스는 왕비 작위를 잃고 사형 당한 [[앤 불린]]의 딸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존 더들리 입장에선 당시 나이가 어리기에 다루기 쉬울 제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 당시 왕위 계승권 서열이 헨리 8세의 장녀 메리, 헨리 8세의 차녀 엘리자베스, 헨리 8세의 조카 프랜시스 브랜든, 헨리 8세의 조카손녀 제인의 순서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원래 메리와 엘리자베스 다음으로는 헨리 8세의 누나 [[마거릿 튜더|마거릿]] 쪽으로 계승권이 넘어가야 하지만, 마거릿 튜더는 스코틀랜드의 왕비였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인이 잉글랜드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헨리 8세는 유언장에서 누나 마거릿과 그 자손들의 계승권을 부정하고, 오직 여동생 [[메리 튜더|메리]](장녀 메리의 이름을 여기에서 따왔다.)와 그 자손들의 계승권만을 인정했다. 그러나 제인 그레이 추대 사건으로 [[메리 튜더|메리]](메리 1세 X)의 자손들은 풍비박산이 나서 결국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식없이 죽자 왕위는 마거릿의 친손녀 메리(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의 장남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에게 넘어갔다. 애초에 적자녀가 몇 안 되니 혹시나 해서 여동생의 계승권을 유언장에 써놓은 게 화를 불렀다.] 길포드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았으나 부모가 끝내 강제로 성사시켰다. 거기에다 길포드가 제인을 성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에 결혼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한 후에 제인은 자신이 여왕으로 추대되었다는 걸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졸도했을 정도로 경악했다. 어떻게든 즉위를 피하려고 >"아니예요! 내가 아니라 메리가 여왕이예요." 라며 필사적으로 거부했지만 부모와 주변 인물들의 강압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울고 불고 몸부림치는 제인을 어머니인 프랜시스가 밀실에 가둬 놓고 즉위에 동의할 때까지 매질했다고 하니 달리 방법이 없었을 수밖에 없다.[* 제인 그레이의 왕위 계승은 '''선대 왕인 [[에드워드 6세]]가 직접 지명한 거였다.''' 다만 미성년자 왕은 관례적으로 왕위계승법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여겨졌고, 메리 1세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토대로 동정표를 얻었고 원래부터 계승권이 우위에 있었기에 그녀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컸다. 게다가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 권력을 남용한 제인의 시아버지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의 평판이 최악이다보니 자연히 제인 그레이에 대한 여론도 나쁠 수밖에 없었다.] 강제로 즉위하여 9일 동안 왕위에 있는 동안 제인은 부모인 도셋 후작 부부와 시아버지인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했지만 자신은 여왕의 남편이니 공동 왕으로 삼아 달라는 길포드의 요청만은 끝내 거절했다.[* 제인 그레이 전기 영화에서는 제인과 길포드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나오기도 했으나, 제인이 길포드에게 클래런스 공작 작위만 준 것으로 보아 제인과 길포드의 사이가 나빴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하지만 제인의 부모와 노섬벌랜드 공작이 제거하려고 했던 [[메리 1세]]는 런던을 탈출해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런던에 재입성하게 되었고, 전세가 바뀐 그 순간에 그녀의 못난 부모는 냉혹하게도 딸 제인과 사위인 길포드를 버리고 탈출했다. 비록 제인은 순순히 폐위에 동의했으나 어쨌든 메리의 즉위를 저지하고 즉위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반역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